이 글은 고대 중국 의학의 단면이 기록된 태평광기(太平廣記) 「의(醫)」류의
기록을 통해 치료/치유의 의미를 되살피고,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전문적 의서(醫書)가 아니라, ‘의’에 관한
박물지적 성격으로 기술된 태평광기 「의」류는 치료/치유에 대해 포괄적이고 느슨한 접근을 하고 있다. 태평광기에는 당시 일반
의서에서 배제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기이한 발병 현황, 평범하지 않은 병인(病因)을 찾아내는 의자(醫者)들과 독특한 치료 방법들이 대거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고대 중국 의학에서 약물치료, 외과적 처치, 위약반응, 종교․주술적 방법 등의 치유법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많은
의자(醫者) 가운데서도 손사막(孫思邈)의 치유는 주목할 만하다. 약왕(藥王), 양의(良醫) 등의 이름으로 칭송되었던 손사막은 약물처방, 침술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한편, 그는 훗날 인문의가(人文醫家)라는 호칭을 부여받는데, 이는 그가 질병과 환자를 대했던 인문학적 태도,
의료윤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손사막은 근심[憂]과 두려움[畏]이라는 예방책이자 처방전을 제시하였다. 이는 각자 가진 사회적 신분에 따라
어려움의 내용은 다르지만, 고통을 삶의 문제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현행하는 인문치료/인문치유 등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손사막이 고통의
범주를 사회적 고통까지 확대시키지는 못했지만, 이런 한계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고통에 대해 육체적 문제를 뛰어넘어 삶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치료를 위한 다양한 분야의 공조적 접근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사막이 강조한 것은 ‘건강한 몸’과 더불어
‘건강한 삶’이다. 몸은 건강하지만, 정신과 마음의 황폐화로 고통을 겪고 있는 ‘지금, 여기’의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의자(醫者)를 기술자가 아닌, 환자와 소통해야 하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의료윤리를 제시한 점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근심과 두려움의 태도를
갖고, 세상과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마음의 수련․정신적 훈련은 인문학을 통해 치유라는 목표에 도달하려는 오늘날의 수많은 노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치료/치유가 특정한 질병과 고통에 대응되는 한정된 용어는 아니다. 인간이 지향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했을 때, 치유의 범위는
넓어지고 깊어진다. 전문적 의료가 아닌, 비의학적 치유 방법이 유행했던 현실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테라피, 치유를
지향하며 그들만의 영역을 확대․심화하는 대안치료의 범람은 건강한 삶을 바라는 사람들의 근원적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과 그 삶을 탐구해온
인문학은 의학과 대척점에 서 있지 않다. 오늘날 손사막의 치유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키워드]
태평광기, 고대 중국 의학, 질병, 고통, 치료/치유, 인문의가, 손사막, 인문학적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