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시선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뜻밖의 사태라는 이야기 구도를 갖고 있는 문학작품 네
편(에우리피데스의 박코스 여신도들, 프란츠 카프카의 「다리」, 마렉 흐와스코의 「구름 속의 첫걸음」, 한강의
채식주의자(「몽고반점」))을 분석함으로써 이 이야기 구도가 지니고 있는 특성 및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시선-사태의 이야기 도식은
드라마나 단편 소설 혹은 장편(掌篇) 등에 걸맞은 이야기 구성으로서 뜻하지 않은 사태의 전환 혹은 급변을 통해 충격 효과를 자아낸다. 네 작품의
테두리 내에서 볼 때 이러한 전환, 급변은 (1) 폭력에 의해 주인공의 시선의 욕망 혹은 충동이 좌절되거나, (2) 주인공들이 몰래보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심각한 갈등상황을 초래하거나, (3) 뜻밖의 인물이 우연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눈의 욕망이 만들어낸 것을 봄으로써
발생한다. 이는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충격이 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욕망의 좌절을 경험하거나 주관적인 의식의 붕괴를 겪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거나 (비록 순간적이거나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쓰라린 자기인식과 자기반성을 하기도 한다. 시선이 불러들인 이야기의
전환으로 인해 독자는 등장인물, 화자, 그리고 작품 자체를 거리를 두고 다시 바라보게 되고, 작품의 숨겨진 그리고 복잡한 차원에 관심을 갖게
되며, 더 나아가 작품 속에 내재한 단절, 갈등, 틈, 모순, 분열, 환상, 억압 등에 주목하게 된다. 과잉된 욕망을 갖고 있던 주인공의 좌절
, 혼동, 몰락을 통해 독자에게 작품을 보다 세밀하고 비판적으로 그리고 ‘이질적인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재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래서 그가 자신의 제한된 인식의 틀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말없이 자극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선-사태’ 이야기 구도가 지니고 있는 진정한
힘일 것이다.
□ 주제어
시선, 눈, 욕망, 에우리피데스, 프란츠 카프카, 마렉 흐와스코, 한강, 박코스
여신도들, 「다리」, 「구름 속의 첫걸음」, 채식주의자(「몽고반점」)